거제 야호?! -언더독 효과
우리는 왜 약자의 승리에 열광하는가
언더독(Underdog)이란 단어는 19세기 개싸움(dogfighting)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싸움에서 이긴 개를 '탑독(top dog)', 그 밑에 깔려 패배한 개를 '언더독'이라 부른 데서 시작된 말이다. 오늘날에는 스포츠 경기나 선거, 경쟁 등에서 승리할 확률이 낮은 약자나 열세에 있는 개인, 혹은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쓰인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언더독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라고 부른다. 왜 우리는 약자가 승산 없는 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고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것일까? 언더독 효과가 발생하는 기제는 복합적이라고 본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동일시(identification)'와 '공정성(fairness)'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압도적인 강자보다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개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오디션 사회에서는 뛰어난 한 사람이 독식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공정하지 못해서 이 레이싱에서 탈락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에 대해 집단적인 알러지와 분노감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는 언더독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고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된다. 이런 동일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차원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사회심리학자 앙리 타페르(Henri Tajfel)와 존 터너(John Turner) 가 정립한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 즉 '내집단(ingroup)'에 긍정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다른 집단인 '외집단(outgroup)'과 구별하려는 본능을 지닌다고 한다. 이 관점에서 언더독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을, 탑독은 '그들'이라는 소수의 강자 집단을 상징하게 된다. 따라서 언더독의 승리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 집단 전체의 가치와 자존감이 드높여지는 대리적 승리로 경험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세상이 공정하게 작동하기를 바라는 '공정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과 유사한 심리적 경향이 있다도 알려져 있다. 강자의 승리는 당연하지만, 약자가 강자를 꺾는 것은 마치 부조리한 질서가 바로잡히는 듯한 정의의 실현으로 느껴져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러한 심리는 인류의 이야기 곳곳에서 발견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언더독 서사의 원형과도 같다. 작은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상징으로 회자된다. 현대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2016년, 만년 하위권 팀이었던 레스터 시티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했을 때, 전 세계 축구 팬들이 열광했던 것은 단순히 한 팀의 승리를 넘어선 언더독의 위대한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거대 기업 IBM을 '빅 브라더'로 규정하고 도전했던 초창기 애플의 모습이나, 수많은 영화와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이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구도 역시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관통한다. 영웅의 서사의 시작은 사실 비천한 천민에서 역경을 이겨나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지만 모든 약자가 언더독으로 인식되어 응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단순히 약하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응원하지 않는다. 언더독 효과가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가 체계화한 '귀인 이론(Attribution Theory)'을 통해 그 심리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귀인 이론은 어떤 사건의 원인-정확히는 인간의 행동의 이유-을 어디에서 찾는지에 대한 심리적 경향을 일컫는다. 우리는 언더독의 성공 가능성을 그들의 '내적 귀인', 즉 피나는 노력과 의지, 재능의 결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강자의 성공은 종종 '외적 귀인', 예컨대 막대한 자본, 운, 시스템의 수혜 등 외부적 요인 덕분이라고 해석한다. 정당한 노력이 아닌 불공정한 이점으로 얻은 승리는 우리의 공정성 감각을 해치기에, 우리는 내적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언더독에게 더 큰 정서적 지지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강자에 대한 반감이나 질투심으로 말하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와는 구별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언더독 '서사'에 매료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으로 설명해볼 만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현실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할 때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해소하려는 동기를 갖는다. 승리가 확실시되는 강자를 응원하는 것은 인지적으로 매우 편안하고 예측 가능한 일이다. 반면, 패배할 확률이 높은 약자를 응원하는 행위는 '그는 질 것이다'라는 합리적 예측과 '그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나의 믿음 사이에 부조화를 일으킨다. 이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언더독이 기적적으로 승리하는 순간, 우리의 인지 부조화는 한 번에 해소되며 짜릿한 쾌감과 만족감을 안겨준다. 예측 가능한 승리보다,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가 더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부조화의 극적인 해소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과가 정해진 각본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드라마에 더 열광하는 관객인 셈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언더독에게 보내는 환호는, 어쩌면 그들의 승리 자체보다 그 승리를 통해 '세상은 아직 살만하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낡고 희미해진 믿음을 확인받고 싶은 우리 자신의 간절한 외침일지 모른다. 약자의 승리는 단순히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알리는 축포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세상의 톱니바퀴 아래서 신음하는 우리 모두의 어깨를 두드리는 따뜻한 격려이며, 내일 다시 한번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울 용기를 주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경기장 한쪽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그 이름 모를 선수에게서, 인기 없는 아이돌 걸 그룹이 초등학교 운동회 흙 바닥에서 흘리는 땀에서, 조연으로만 30년을 지낸 긴 무명의 시절을 보낸 배우가 성공하는 언더덕의 신화를 보고 싶어하고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